이미지 캡션 스코를랜드에서의 마고 (1966/7)

마고 페린은 부모에게 뭔가 수상한 점이 있다는 건 느꼈지만, 정확히 그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기까진 수년이 걸렸다. 특히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영국 글래스고 웨스트엔드에 있던 집 거실에서 딸을 불러 예뻐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마고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아버지는 금 라이터와 줄마노 재떨이를 옆에 두고, 윤이 나는 검은색 담배 홀더로 담배를 피우며 “현대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라고 마고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런던에 있는 전문가를 만났고, 전문가는 마고의 코가 더 커지기 전에 치수를 줄이는 성형수술을 해주기로 했다고 했다. 약속까지도 이미 잡았다고 했다.

이미지 캡션 1961년 뉴욕에서 찍은 마고의 가족사진

마고의 성장 과정 대부분은 충격적이었고 혼란스러웠다. 8살까지 가족과 뉴욕 맨해튼에 있는 펜트하우스 스위트에서 살았고 이후의 삶은 점점 불안정해졌다. 가족은 새로운 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비정상적으로 자주 이사를 했다.

멕시코에서 살던 어느 날, 그들의 집에 누군가 침입했다. 집을 샅샅이 뒤진 흔적이 있었지만 훔쳐간 물건은 없는 듯했다. 마치 특정한 무엇을 노린 것 같았다.

“어떻게 우리를 찾았지?” 라고 마고의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아무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알면 안 되는데!”

가족은 택시를 타고 다시 이사했다. 이번에는 바하마였다.

마고의 부모는 이런 갑작스러운 일들에 대한 이유나 과거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유일한 실마리는 부모간의 대화나 싸움 도중 자주 등장한 단어, ‘FBI’ 뿐이었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마고는 말한다. “속임을 당한 아이들일수록 거의 탐정처럼 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 캡션 아덴과 마고, 플로리다 (1963/4)

마고의 부모 릴리안과 아덴은 매우 화려했다. 아버지 아덴은 그의 가슴주머니에 손수건을 꽂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등 항상 완벽한 모습을 유지했다. 릴리안은 아름다운 드레스와 화장으로 치장했고 연필로 그린 아치형 눈썹은 영구적으로 놀란 인상을 주었다.

뉴욕에 살 당시 릴리안과 아덴은 칵테일을 즐겨 마셨고 거의 매일 오페라나 영화를 관람하러 나가곤 했다고 마고는 기억한다. 어린 마고를 돌보는 일은 큰언니에게 맡겨졌다.

릴리안과 아덴은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아이들에게 당부했고, 심지어 아덴은 반갑지 않은 질문 공세에 대처하는 처세술도 가르쳐주었다. 만약 누군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하면 그냥 다른 대답을 하라고 말이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하면 안됬다”고 마고는 기억했다.

이미지 캡션 아덴 페린,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1967년 즈음)

어느날 마이애미 해변에 있는 학교에서 돌아온 마고는 누군가에게 맞아 얼굴이 검고 푸르게 멍이 들어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 “아빠 봤어?” 자매 중 한 명이 물었다.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나쁜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마고의 부모는 왜 아버지가 누구에게 맞았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그때 거실에 앉아있던 낯선 사람이 경호원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걸 물어볼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들은 항상 살 집과 먹을 음식이 있었고 학교에도 꼬박꼬박 다녔지만,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은 부족했다. 단순히 그들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정도가 아녔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소스라칠 정도로 무서워했다.

아버지는 퇴근 후 한 아이씩 돌아가며 무릎 위에 앉힌다음 탁구채로 때리며 잘못을 꾸짖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앙심을 품은듯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미지 캡션 영국 스코틀랜드 집 앞에 앉아있는 마고 (1967/8)

마고는 아버지가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처음엔 코 성형수술 하는 것을 거부했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나중에 마고의 방에 와서 울며 불안해하자 마고는 그제야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제발 코 성형을 해줘”. 언니가 간곡하게 애원했다. “네가 하지 않으면 아빠는 내가 집을 떠나지 못하게 할 거야.”

형제들은 모두 부모에게서 탈출하기를 간절하게 원했고 마고는 언니에게 방해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마비가 되는 느낌이었다”고 마고는 말했다. “난 언니를 보호하고 싶었죠.”

런던 중심부에 있는 사립병원 밀집거리인 할리 스트리트의 코 전문의 사무실에서, 마고는 여러 종류의 코들로 가득한 포트폴리오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수술하게 될 병원에 딸을 놔두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돌아갔다.

3일 후 마고의 코는 아직 붕대로 감겨있었고 눈도 여전히 까맣게 부어있었다. 그 상태로 13살 마고는 혼자서 스코틀랜드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가족에게 다시 이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업 확장을 하기엔 런던이 더 좋은 장소라는 것이다. 마고의 남동생이 어떤 사업이냐고 묻자 “스웨터 챙기는 거 잊지 마라”고만 대답했다.

런던으로 이사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마고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됐다.

“아빠는 날 죽이려고 할 거야.”

남자친구와 함께 글래스고에 남게 된 언니에게 전화한 마고는 흐느꼈다.

“누가 널 죽일 거라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뒤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아버지는 마고의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은 다음, 마고가 실토할 때까지 머리채를 잡고 비틀었다.

글래스고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마고는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선술집에 갔다. 친구를 찾지 못했지만, 수염 난 한 낯선 이가 사준 술을 마시고 그의 집에 갔다.

거기서 그가 갈색 가루와 물을 숟가락 위에 섞어 제조한 액체를 바늘에 넣고 팔꿈치 안쪽에 주입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둘은 화장실의 검고 하얀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성관계를 했고, 남자가 잠들자 마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로 마고는 임신했고, 아버지는 갖은 욕을 하며 배를 때리고 누구의 아이인지 밝히라고 추궁했다.

마고는 낙태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코 성형수술 때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택시에 그녀를 밀어 넣고 작은 여행 가방을 던지면서 얼마나 이런 것을 준비하는 게 힘들었는지 강조했다.

영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건 그때보다 2년 전인 1967년이었지만 터부시 되는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특히 임신한 여성이 미혼 미성년자였을 경우에는 더 그랬다.

런던 병원 분만병동 밖에 있는 한 병실에 혼자 입원한 마고는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웃음소리와, 담소, 새로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 중 한 명은 병실을 나가면서 “더러운 것” 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미지 캡션 코 성형수술과 낙태수술 이후 가족여행을 떠난 마고(왼쪽) – 어머니는 마고의 머리까지 자르게 했다.

마침내 16살에 집을 떠난 마고는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를 바꿔가며, 단칸 셋방에서 살기도 하고 불법거주도 하면서 마약을 복용했다.

그러다 19살 때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암으로 진단받고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살고 싶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마고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뭔가 해내고 싶었어요.” 마고는 회복되자 삶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고는 부모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더 좋았다.

이미지 캡션 마고, 샌프란시스코 (1986)

이상했던 어린 시절은 계속 마고를 혼란스럽게 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부모에 대한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의 처제가 뉴욕 타임즈에 기고된 마고의 자매의 글을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처제는 FBI가 아덴을 찾고 있었고 가족 모두를 심문했다고 했다.

이후 2007년, 마고는 형수가 찾은 아버지의 사망신고서를 통해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아덴은 3년 전 영국 서섹스에서 연이은 뇌졸중으로 사망했는데, 사망신고서 직업란엔 ‘경제학자, 은퇴함’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 사망신고서를 FBI에 보내 아버지에 관한 기록을 요청하자, FBI는 1940년대부터 시작되는 100쪽 분량의 자세한 전과기록을 보내왔다.

충격적인 사실을 대면한 마고는 당시 기분이 “엘리베이터가 공중에서 갑자기 1층으로 떨어질 때 위에서 느껴지는 그런 충격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뉴욕 마피아와 연루됐던 아버지는 140,000달러 (오늘날의 금액으로 약 백만달러) 파산 사기로 FBI에게 쫓기는 몸이었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사람들이 투자하게끔 설득하는 게 전문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창고를 근거지로 위스키 사업의 주식을 팔았다. 아버지는 대부분 인생을 가족과 함께 도망 다니며 보냈던 것이다.

이미지 캡션 마고, 이태리 (1998)

마고는 아버지가 수치스러웠다.

“돈을 훔치는 게 아버지의 직업이었어요. 아버지는 사람을 이용하는 걸 즐겼던 깡패였고, 밑바닥 사람이였던거죠.”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강제로 마고가 코 성형수술을 하도록 했을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마고의 코 때문에 밝혀질까 봐 두려워서라는 게 마고의 추측이다.

마고와 형제들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은 마고가 유대인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부모는 가족의 배경에 대한 주제는 항상 회피하곤 했다. 마고의 ‘유대인 코’가 아버지의 가짜 신분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고 마고는 결론지었다.

“생각만 해도 역겨워요. 아버지가 한 행동은 너무나 잔인해요.”


‘유대인의 코’는 정말로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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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예술가 데니스 카르돈과 그의 설치예술 작품 ’49개의 유대인 코’

역사가 샤로나 펄은 올해 초 ‘태블릿’ 잡지에서 ‘유대인의 코’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대인의 코라는 건 없습니다… 그들의 코가 특별하거나 일반 사람들의 코와 많이 다르지 않아요.”

“(구부러지고, 괴기하며, 혐오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큰 유대인의 코는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에요.”

1911년 4,000명의 유대인의 코 길이를 잰 모리스 피시버그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의 코가 크고 구부러진 것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부터였다고 펄은 덧붙였다.


현재 64살인 마고는 돌아보면 많은 것을 이루었다. 졸업장은 하나 없지만 작가가 됐고, 영국과 미국 학교에서 창조적 글쓰기를 가르쳤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아이는 갖지 않았고, 마고는 그 이유를 14살에 낙태수술을 강제로 한 트라우마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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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감옥에서의 마고 (2006)

마고는 감옥 죄수들에게 창작 글쓰기와 시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면서 큰 기쁨을 느꼈다. 부모가 교도소장 같았던 마고는 감금되어 무력한 이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폭력적인 사람들이 그들 내면에 있는 인간성을 내게 보여주었고, 그건 매우 큰 위안이 되었다”고 마고는 말했다.

“아버지에게 한번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그들에게서 받았죠.”

글쓰기를 통해 죄수들이 과거를 대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마고 자신의 과거도 함께 치유되는 듯했다.

마고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고 아직 수 십 년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난 폭력적이지 않고 사기꾼도 아니에요. 매우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요.” 1986년 미국으로 돌아온 마고는 말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많은 것을 이뤄낸 나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고 페린은 자전소설 ‘The Opposite of Hollywood’을 집필했다.

기사에 별도로 표기되지 않은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마고 페린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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